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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 달마도

미래로보텍 2008. 1. 27. 19:08


달마도 [達磨圖]
 
김명국 (金明國)
종이에 수묵
조선 중기
83cm x 57cm
국립중앙박물관
 
김명국은 그 이름 석자보다도 <달마도>라는 그림으로 더 유명한 조선중기 화가이다. 그의 호인 ''취옹'' (醉翁: 술 취한 늙은이) 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와 마치 술 취한 상태에 서 울분을 토해내듯 아무 거리낌없이 그어내린 이 그림을 통하여 그가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였음을 이끌어 내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그는 신분제도가 엄격하였던 조선시대에 양반이 아닌 국가에 고용된 일개 환쟁이 에 지나지 않았으며 소위 성리학이라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관념을 지배하던 상황 속에서 그가 주업으로 삼았던 그림은 더군다나 하찮은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 자신의 천재를 술로써 달랬던 김명국의 생애와 그림은 어떠 하였을까?

김명국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조차 확인할 수 없다. 1600년 태생으로 씌어 있는 책이 있지만 그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항은 본관은 안산(安山), 호는 연담(蓮潭) 또는 취옹, 개명하여 명국(命國)이라고 했는데 鳴國으로 쓰인 문헌도 있다. 도화서(圖畵署)의 화원(畵員)이었으며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다녀온 바 있다.

이상이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인적사항의 전부로 이처럼 그에 관한 기록이 박약한 것은 환장이를 천시하는 당시 풍토에 비춰보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난 반세기 후 상황은 달라진다.

임진왜란 이후 신분제에 동요가 생기면서 소위 중인 계층이 역사의 무대에 부상하게 되고 영 정조 문예부흥기를 맞이하여 문예 전반에 활기가 돌면서 그림이나 음악에 재능이 풍부한 그러나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해 기인(奇人)으로 살다간 사람들의 전기가 대거 쓰여지면서 그는 당대에 받지 못한 평가를 받게 된다.

즉 그는 그 이전 어떤 대가도 받지 못한 "신필(神筆)" 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게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술은 창작의 촉매제였다. 훗날 그를 신품(神品)으로 극찬하였던 남태응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김명국은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여 남이 그림을 요구하면 곧 술부터 찾았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 재주 가 다 나오질 않았고, 또 술에 만취하면 만취해서 제대로 잘 그릴 수가 없었다. 오직 술에 취하고는 싶으나 아직은 덜 취한 상태에서만 오로지 잘 그릴 수 있었으니 그와 같이 잘된 그림은 아주 드물고 세상에 전하는 그림 중에는 술이 덜 취하거나 아주 취해 버린 상태에서 그린 것이 많아 마치 용과 지렁이가 서로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실제 그의 작품에서도 걸작과 실패작이 뒤섞여 있는데 술이 창작의 촉매제였건 아니었건, 그취하는 정도에 따라 작과 타작이 섞여 나왔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러나 남태응은 그것을 그의 미천한 신분, 그리고 싶지 않을 때도 어쩔수 없이 그려야만 했던 화원이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돌리는 관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던 <달마도>는 인도 불교의 28대 교주로 중국에 건너와 소림사에서 면벽구년의 수도 후 선종을 개창 한 달마대사의 초상이다. 활달한 필치로 아무 거리낌 없이 그어내린 몇 가닥의 선으로 달마대사의 이미지를 형상화시키고 얼굴을 묘사하는 데서는 엷은 먹을 사용한 빠른 필치로 그의 이국적인 풍모와 함께 깊은 정신세계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동양화에서 말하는 운필(運筆)의 힘과 선의 함축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실감할 수 있으며 겉모양을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는데 더 높은 뜻을 두었던 수묵화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는 인물화 뿐만 아니라 산수화에 있어서도 호방한 필치를 보여준다. 나귀를 탄 채 먼길을 떠나는 노인과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사립문에 기대어 달래는 사람 사이의 따뜻한 인정을 차가운 설경(雪景) 속에 대조시킨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는 강한 필묵 법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거칠게 그린 것 같지만 인물과 나귀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이나 다리를 그린 것을 보면 대상을 아주 명쾌하게 잡아내고 있다. 인물을 이와 같이 설정하고 난 다음 빠른 필치로 붓가는대로 그려나간 산세와 나뭇가지 그리고 넝쿨과 태점은 그의 분방한 개성과 붓놀림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었듯이 그는 그 시대 기인이었고 강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한다. 그는 비록 시대를 잘못 타고나 당대에 그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 자신의 개성은 작품 속에 남아 반세기 후 숱한 찬사를 받았으며 300년 후의 우리들에게도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