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반존자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란 "남의 도움을 받지않고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된 사람"
이라는게 보편적인 해석이고, 말법시대에 나타나 미륵불이 오기전까지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재앙을 없애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미륵하생경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열반에 즈음하여
네 명의 큰 제자들에게 '나의 가르침이 사라질 때까지 열반에 들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석가모니부처 열반후 중생들을 위한 부처님의 자비인 것이다.
이때 네명의 제자는 마하가섭 존자, 군도발탄 존자, 빈두로 존자, 라후라 존자이다.
이 가운데 빈두로 존자가 바로 나반존자라고 한다.
나반존자 즉 빈두로 존자는 범어 '핀돌라바라드바자'의 음역인데, 16나한 중 한 분이다.
흰 머리와 긴 눈썹을 가진 분으로서 부처님 당시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며 포교에 힘썼다.
특히 나반존자는 부처님 제자중에 신통술이 자재했다
어느때 먼 지방의 산에서 나반(빈두로파라타)이 있을때
부처님이 그 지방을 지나게 되었다.
기쁜 나머지 바늘질을 하던 바늘을 땅에 꽂고 그 실은 옷에 연결한 채 달려 가는데
거대한 산이 그 실에 매달려 끌려 가는 것이다.
또 어느날 목건련과 시내로 탁발을 나갔을 때 어떤 부호가 전단향나무를
공중에 매달아 놓고 누구든지 신통력으로 그것을 가져가라고 하는 것을 보고
그가 신통력을 나타내어 그것을 따내는 등 신통술이대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신통술을 대중앞에서 자주 보이자 결국 부처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게된다.
그후 신통술 엄금의 불호령으로 조용히 지내다가 부처님께서 열반전에
`미래세계의 중생들의 복전(복밭)이 되어라`는 유촉을 받고 지금도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나반존자를 독성각에 모시고 받들고 있다.
이 독성 신앙은 미륵경에 근거한 말법시대 중생을 위한 신앙이라 하겠다.
독성각을 보면서 말법시대 중생을 위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를 느낄수 있다.
범어로 바이사쟈구르바이두르야(Bhaisajyaguru-vaidurya)이며 약사여래불, 약사여래, 약사불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동방 정유리세계의 교주로 이름대로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 합니다.
이 부처님은 특히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는 큰 서원을 세웠는데 12대원이 있습니다.
1. 자기와 다른이의 몸에서 나는 광명이 항상 환히 타오르기를 서원하고
2. 거룩한 위덕으로 중생을 깨닫게 하기를 서원하며
3. 중생으로 하여금 하고자 하는 바를 다 만족하게 하되 조금도 모자람이 없게 하기를 서원하고
4.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한 행을 닦고 삼취정계를 갖추도록 하기를 서원하고
5.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대승의 가르침에 편안히 머물기를 서원하고
6. 일체의 신체장애자로 하여금 그 장애가 완전하게 회복되기를 서원하고
7.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질병을 다 없애고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도록 하는 서원을 세우며
8. 모든 여인이 그 몸을 바꿔 남자로 태어나기를 서원하고
9. 일체중행으로 하여금 천마(天魔), 외도의 삿된 소견으로부터 벗어나 올바른 견해를 얻도록 포섭하기를 서원하며
10.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폭군의 악정과 사회적 부조리, 강도나 기타 적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서원하며
11. 기아에 허덕이는 중생들로 하여금 충분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게 되기를 서원하며
12. 가난하여 헐벗은 중생들에게 의식의 부족함이 없게 하며, 집없는 중생들에게 거주할 주택을 마련함에 어려움이 없기를 서원하였습니다.
이러한 12가지 서원 중에서도 질병의 고통이 가장 심하기 때문에 병의 고침을 가장 중히 여기십니다.
큰 연꽃 위에 앉아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ㅡ,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맺고 있는 모습이 가장 많습니다. 좌우 보처는 일광변조보살과 월광변조보살이 있으며 전각은 약사전이나 유리보전이라고 합니다. 혹은 동방만월세계의 주인이라고 하여 만월보전이라고도 합니다.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 (보물 431호)
직지사 석조약사여래좌상 (보물 319호)
흥국사 만월보전의 약사여래불 : 등산과 유적답사의 산등성님 사진을 모셔왔음
금동 약사여래불입상 (보물 328호, 통일신라, 국립중앙박물관)
금동약사여래입상 (통일신라, 미국 보스턴박물관)
백율사 금동약사여래입상 (국보 28호) : 약사여래로 알려진 불상은 많아도 특징적 수인을 잘 보여주는 불상은 의외로 적군요. 대체로 대웅보전에 삼존불로 모셔진 불상들은 약함을 들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후불탱화를 보아야만 약사여래임을 알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흥사 대웅보전의 약사여래 : 후불탱화를 통해서 약함을 들고 계신 것이 확인된다.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국보 58호)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보물337호)
지리산 실상사 약사전의 철조여래좌상 (보물 41호) : 수인으로 볼 때는 아미타불로 보입니다만 전각에는 약사전이라고 되어있으니 어떻게 보아야 할지, 만든 사람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현재 모시는 사람의 뜻을 더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산 평촌리석조약사여래입상 (보물 536호, 고려시대)
안성 굴암사마애약사불좌상 : 오히려 마애불 중에서 약사여래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경우가 많군요.
하남 태평이년명약사여래좌상 (보물 981호,고려시대)
팔공산 마애약사여래불좌상
안동 옥산사마애약사여래불좌상
남산 윤을곡마애여래삼존불상 : 좌우의 두분은 손에 둥근 약함을 들고 있는 것으로보이지요.
일본 나라현 고후쿠지의 약사여래불
티벳 만다라의 약사여래 불화
티벳의 만다라에 보이는 약사여래 불화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지옥의 찌꺼기만 만들고 가네/내 뼈와 살은 저 숲 속에 버려두어/산짐승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조선 중기 희언 스님의 열반송)
불교 고승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게송을 남긴다. ‘열반송’ 혹은 ‘임종게’라고 부르는 이 게송들은 한 수행자가 평생을 이어온 치열한 수행의 마침표이자, 세상과 제자들에게 전하는 깨달음의 흔적이다.
최근 발간된 ‘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이른아침출판사)는 고려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65명의 고승들의 열반송을 모았다. 열반송들은 역설과 비약으로 가득 차 난해하면서도 언어를 넘어선 어떤 경지를 느끼게 한다.
성철 스님의 열반송은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고 시작한다. 50년간 하루 한 끼로 생활하며 치열하게 수행했던 청화 스님은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춘성 스님은 “여든 일곱 살았던 일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졌다가 일어남이라”고 노래했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경지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일타 스님은 “생사와 열반이 일찍이 꿈”이라고 했고, 원각 스님도 “모든 부처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또한 열반에 들지도 않았네/ 나고 죽는 것이 본래 없으니/ 찼다가 빈 것이 한 바퀴 달이로세”라고 말했다. 죽음을 ‘고향’으로 표현한 게송도 많다. 고려 때 나옹 스님은 “칠십팔 년 고향으로 돌아가니/ 이 산하대지 온 우주가 법계이네”라고 노래했고, 서운 스님도 “삼독으로 화탕지옥에서 한 평생을 지냈다/ 이제 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니”라는 게송을 남겼다.
열반송이라는 형식 자체를 거부한 경우도 있다. 서암 스님은 2003년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이 열반송을 묻자 “나는 그런 거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제자들이 재촉하자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말만 남겼다.
미국에 한국의 선불교를 전한 것으로 유명한 숭산 스님도 제자들이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말라,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요, 청산유수(靑山流水)”라고 말하고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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