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도의 의미와 기능
1)기도의 의미
기도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보통,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위대한 힘에 의지하여 이루고자 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원행위는 원시종교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즉, 자연의 막강한 위력 앞에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인간으로써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런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다양한 원시종교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가장 원초적인 신앙형태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차츰 인류의 문명이 진화하면서 종교에서는 이러한 신앙의 대상에 대해 보다 합리적이고 이론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동양의 몇몇 종교는 이러한 원시신앙에서 출발한 신 중심의 종교관에서 벗어나 인류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이상실현을 목표로 한다. 불교, 유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 서구 종교인들은 불교나 유교를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구분지으려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다. 왜냐하면 불교는 중생구제를 위한 구체적인 삶의 철학이고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면이 가장 살아있는 현장이 기도이다. 기도는 한계상황에 닥친 인간의 마지막 희망인 까닭에 불교의 자비 구세 정신은 이러한 인간들의 기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의 바람을 들어 줄 많은 불보살님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서원하기를 인간이 겪는 모든 고난에서 사람들을 건져낼 것이며 이 세상 사람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세계를 완성하겠다 했고, 그 서원을 이루었다. 이렇게 성취되고 갖추어진 우리의 희망은 불보살님의 본원력이라는 이름으로 그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이루어졌고 갖추어졌다.
그러나 어디에 갖추어져 있는가. 앞에서 염불을 설명하면서 누차 강조했듯이 그것은 외부에 고정된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 생명의 바탕이자 우주의 근원인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숨쉬고 물 마시듯이 이미 그 해택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파도라면 그것은 바다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면 ‘나’라는 존재를 찾을 수 있겠는가. 단지 지구라는 커다란 공같은 것 속에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을...... 이와 같이 우리는 각기 일어났다 사라지는 파도이니 파도가 바다를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자신은 근원과 둘이 아니다. 불보살님의 위신력은 나와 둘이 아니니, 단지 그것을 자각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어리석고 의심이 많은 중생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고 고통 속에 해메이니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수행이다.
편집 : 고견스님
그래서 앞에서 말한 모든 수행법들은 궁극적으로 나의 본질과 우주의 원리를 깨닫고 잘못된 모든 속박과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은 무수한 겁 동안에 쌓여진 업장으로 굳게 뭉쳐있어 좀처럼 벗기가 어렵다. 더욱이 깨달음이란 ‘언제까지하면 된다’는 기약이 없기 때문에 수행의 길은 더욱 힘겹게 여겨진다. 어떤 사람은 경전의 사구게 한마디를 듣고 깨닫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평생을 해도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런 사람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내 혼자만의 힘으로는 언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도무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럴 때 먼저 깨달음을 얻으시고 중생구제를 위해 애쓰시는 많은 불보살님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무수한 세월동안 보살행을 닦은 연후에 깨달음을 얻지 않았던가. 내가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다만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니 그분들을 생각하며 나도 또한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이 다. 불교에서의 기도란 바로 이런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기도는 궁극적으로 성불의 바탕이 되므로 수행법이다. 기도가 수행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의미에서 나는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수행법이라 강조한다. 따라서 수행으로서 기도란 외부의 대상에게 무엇을 이루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무엇을 이루겠다는 원을 세우고 그 원을 성취해가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자기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의미가 이렇다고 하더라도 당장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에게 원칙만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기도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힘으로 그 길을 떠날 힘도 여유도 없다. 그들을 위해 기도라고 하는 방편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불자라면 경전은 진실된 말씀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 경전에 불보살님들의 서원이 나와있고 또 성취되었으며 그 공덕으로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데 어찌 이 말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간절한 염원과 불보살님의 위신력에 대한 믿음이 고통으로부터 벗아날 수 있다는 희망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강력한 믿음과 희망의 힘에 의해 실제로 고통으로부터 구원받는다. 먼저, 믿는 동시에 안심을 찾게 되고, 희망을 갖는 동시에 삶은 이미 이전과 달라진다. 기도에 열중하다보면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고 산만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을 찾게 된다. 이렇게 기도를 해나가다 보면 정신이 맑고 고요해지면서 시간과 공간도 사라지고 나 조차도 없어져 버리는 삼매체험을 하게 된다. 이 때 대개 불보살님이 나타나시어 이마를 만져주시거나 미소짓는 모습을 보이신다. 또는 꿈에 현몽하시는 등의 징표가 있게 되는데 이로써 기도는 성취된다.
2. 기도의 기능
기도의 기능은 근심·걱정 등 번뇌를 제거하고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하며, 두려움 없이 장애를 극복케하고,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살아가게 한다. 기도의 공덕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겠지만 크게 세가지로 이야기 하면, 첫 번째는 바라는 바를 성취하는 것으로 이것이 기도의 가장 대표적인 기능이다. 두 번째는 업장소멸이다. 세 번째는 자기 다짐을 강화하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이다
①소원성취
살다보면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극한 상황과 맞닥드릴 수 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소망들이 있다. 이것들을 이루고자 기원하는 것이 기도이고 또한 기도를 통해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원래 누구나 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바른 목적과 방법으로 기도를 하면 이루지 못할 바가 없다. 그 원리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②업장소멸
기도가 성취되는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나를 잊고 오로지 기도하는 행위에 전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묵은 때가 씻겨 나가 신심이 청정해진다. 이것이 바로 업장소멸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무수한 과거로부터 찰라전의 순간까지 쌓여온 온갖 묵은 때가 잠깐동안의 삼매 속에서 한꺼번에 녹아지는 것이다. 어떻게 산더미처럼 쌓인 죄가 한꺼번에 녹아 없어질 수 있는가. 그것은 진실한 참회가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천수경에서는 “백겁동안 쌓은 죄가 한생각에 문득 사라지는 것이 마른풀이 한꺼번에 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기도를 하는 중에 문득 그 동안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상처받은 마음, 원한 �힌 마음들이 눈 녹듯이 녹아진다. 그러면서 저절로 참회가 되고,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솟아오르며 모든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통해 업장이 사라진다. 또는 직접 이런 현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도뿐만아니라 모든 삼매가 갖고 있는 기능인데, 삼매는 번뇌업장을 녹이고 지혜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③자기점검
기도는 특별히 위급한 상황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자가 일상적으로 자기를 점검하고 반성하며 거듭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사찰에서 실시하는 조석예불이다. 기도가 수행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업장소멸과 자기정화라는 측면에서 수행이며, 또한 기도를 통해 자기를 점검하게 되므로 수행법이다. 매일의 기도는 자신을 점검하고 의지를 강화하여 하면된다는 신념과 용기를 준다. 수행에 있어 점검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귿이 강조하지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자기점검으로써의 기도를 일상화하여 매일 거르지 않고 해야 한다. 아침에는 하루 생활할 원칙을 발원하고 밤에는 그것을 잘 지켰는지 반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기도수행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점점 몸과 마음이 맑고 밝아지며 이러한 맑고 밝음이 곧 깨달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2.기도의 원리
1)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니다
모든 불보살님들은 본원과 별원에 의해 수행하여 그것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무량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 이것을 확신하는 수행이 기도이므로 불보살과 감응하여 가피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타력신앙의 관점은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이 자력수행이다 보니 교리적으로 모순되는 것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타력이란 자력과 상관없는 별개의 타력이 아닌 자력이면서 타력이고 타력이면서 자력이다. 왜냐하면 불보살님의 위신력에 감응하여 가피를 얻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자가 일심이 되어야 하는데 이 일심 속에서는 자력과 타력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명심한다면 기도수행을 하는데 맹신이라는 장애와 의심이라고 하는 장애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연화대를 관조하였으면 다음에는 부처님을 생각하여라. 어째 그런가하면 모든 부처님은 바로 온 세계인 법계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속에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의 32상과 80隨形好인 것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를 이루고 또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지혜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생각을 골똘히 하여 저 아미타불과 그 지혜 공덕인 여래, 응공, 정변지를 깊이 관조해야 하느니라.” <관무량수경>
불보살의 위신력이 분명히 있어 기도 중에 가피를 받게 되지만 그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관무량수경>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부처님은 중생의 마음 속에 계시며 그 마음으로 부처를 이룸을 명심해야 마구니에게 홀리지 않고 부처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앞의 염불수행에서 유심정토와 타방정토가 둘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닌 것이다.
2)기도성취의 원리 ▒
왜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닌지, 기도성취의 원리를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도의 첫 번째 기능은 소원성취라고 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대상은 관세음보살일 수도 있고, 지장보살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고, 바위일 수도 있다. 또 같은 대상을 두고 기도를 해도 어떤 사람은 이루어지고 어떤 사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 어떤 원리가 있길래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현실로 이루어 지는가.
불교에서는 불보살님의 위신력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하며 무속에서는 무당의 힘 또는 그 무당이 받드는 신의 힘 또는 바위가 신령해서 라고 한다. 과연 그런 힘이 거기에 있다면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결과를 갖지 않는가. 믿음이 부족해서,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말한다. 여기서 왜 믿음이라든가 정성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히 풀린다. 아무리 타력이라고 해도 실은 자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속에서 일부 신통력이나 어떤 부분적인 능력에 의해 외부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지만 기도라고 할 때는 기원하는 주체가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했느냐하는 것이 관건이지 기도의 대상은 방편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방편이라고 하지 않고 외부의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맹신이고 이것을 조장하는 것이 사이비이다. 만일 외부에 절대적 존재가 있다면 그리하여 그가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면 왜 사랑의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지 않고 오직 예수를 믿는 자만,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가. 또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자비의 화신인데 왜 먼저 와서 구해주지 않고 중생이 그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또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한 모습이 아니고 상인으로도 승려로도 여자로도 남자로도 아이로도 노인으로도 나타난다 했는데 그럼 이때 도움을 준 그 사람은 관세음보살인가 지장보살인가.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한치의 의심이나 간격도 없이 온전히 부처를 이루고 관세음보살을 이룰 때 기도도 성취되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네 이름을 부르면 곧 삼재팔란을 면할 것이다. 이 모두가 “네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이란 변덕이 심하고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따라서 마음에 의지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해오던 분별하고 의심하던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본심에 의지한다는 말이다. 이 때 올바른 방편이 필요한 것이다. 중생심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쉽게 근본으로 돌아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사의한 공덕을 갖춘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거나 진언을 염송하는 것이다. 이때 바른 방편은 본심을 여의지 않으므로 바른 길로 인도한다. 본심을 한마음이라고도 하고 자성이라고도 하고 주인공이라고도 한다. 마음이라고는 하나 나와 너, 안과 밖이 없는 거기에 의지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원리이다.
3.기도의 대상 ▒
모든 불보살님이 본원과 별원에 의해 수행을 하고 위신력을 얻었으므로 이분들의 위신력에 의지하는 기도가 가능하다. 경전에 나오는 불보살님 명호만도 무수한 수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이 가장 대중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므로 먼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자. 왜냐하면 기도를 할 때에는 먼저 기도의 대상을 정하고 대상이 되는 불보살님의 위신력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안 뒤에 거기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1)관세음보살
①관세음보살의 위신력
그 때 무진의(無盡意)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드러내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만일 한량 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이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이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받들면, 그는 혹시 큰 불속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관세음 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며, 혹은 큰 물에 떠내려 가게 되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게 되며, 혹은 백천만억 중생이 금 · 은 · 유리 · 자거 · 마노 · 산호 · 호박 · 진주 같은 보배를 구하려고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가령 폭풍이 일어 그들의 배가 나찰귀들의 나라에 포착되었을지라도 그 가운데 만일 한 사람이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여러 사람들이 다 나찰의 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니, 이러한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만일 해를 당하게 되었을지라도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이 가진 칼이나 막대기가 곧 조각조각 부러져 능히 벗어날 수 있으며, 혹은 삼천대천 국토에 가득한 야차 · 나찰들이 와서 사람들을 괴롭히려 하더라도, 관세음 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여러 아귀가 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겠거늘, 하물며 어찌 해칠 수 있겠느냐. 또 어떤 사람이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고랑이 손발에 채워지고 몸이 묶였을지라도, 관세음 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이것들이 다 끊어지고 풀어져 곧 벗어나리라. 만일 또 삼천대천 국토에 원적(怨賊)이 가득찬 곳을 한 상인의 우두머리가 여러 상인을 이끌고 귀중한 보물을 가진채 험한 길을 지나갈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선남자들이여, 무서워 말고 두려워 말라. 그대들은 진심으로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부를지니라. 이 보살이 능히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리니, 그대들이 이 이름을 부르면 이 원적들을 무사히 벗어나리라’하고, 이에 여러 상인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소리를 내어 ‘나무 관세음 보살 ’하면 곧 그 난을 벗어나리라.
무진의야, 관세음 보살마하살의 위신력이 이와 같이 훌륭하니라. 또 만일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관세음 보살을 항상 행각하고 공경하면 곧 음욕을 여의게 되며, 혹은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관세음 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마음을 여일 수 있으며, 혹은 어리석음이 많더라도 관세음 보살을 항상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어리석음을 여일 것이니라.
무진의야, 관세음 보살이 이런 위신력으로 이롭게 함이 많으니 중생은 마땅히 마음으로 항상 생각할 것이니라. 또 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 낳기를 원하여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경하면 곧 복덕과 지혜가 있는 아들을 낳게 되고, 만일 딸 낳기를 원한다면 곧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딸을 낳게 되리니, 덕의 근본을 잘 심었으므로 여러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리라. 만일 또 중생이 관세음 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면 복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으리니, 그러므로 중생이 모두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받들어야 하느니라.”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②관음신앙
관세음보살의 위와 같은 광대한 위신력에 의지한 것이 관음신앙이다. 어원은 Avalokitesvara로 ‘세간을 관하여 보는 신’ 또는 ‘세상의 소리를 관하는 자’의 뜻으로 관세음, 관자재, 광세음, 관세음자재, 광세음대세지대사, 관음대사 등으로 불린다. 즉, 세상의 고통받는 중생들의 소리를 관한고 여기에 응답하는 구제자를 말한다. 특히 관세음보살은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천수천안이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얼굴로 중생의 고통을 보고 즉시 구원한다는 구제자의 면모를 잘 나타낸다.
관음신앙의 기원은 서력기원 전의 일로 추정되며 1세기경에 성립된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53선지식 중 하나로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능엄경> 등에서 관음신앙의 초기형태를 알 수 있고, 1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관음보살상이 인도 간다라 지방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 이들 경전이 번역되면서 관음신앙이 민간에 전래되었고, 천태교학의 전개와 더불어 더욱 확산되었다. 이러한 영향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관음신앙이 유포되었다. 특히 강원도 낙산사를 비롯하여 전국 도처에 이름난 관음기도도량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독송되고 있는 천수경이 바로 관음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미루어 보아 일반 불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분이 아니까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현재 기도의 대상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분이 바로 관세음 보살이다.
2)지장보살
①지장보살의 위신력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혹 여러 유정들이 가지가지 욕구와 근심과 고통이 절박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귀의하고 공경하고 공양한다면, 법다이 구하는 바 모든 것을 얻어 모든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굶주림이 핍박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고 외우며, 귀의하고 공경하고 공양한다면, 일체에 법다이 구하는 바 음식이 충족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함을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모든 유정들이 가지가지 의복과 보배장식과 의약과 침상과 방석과 그밖에 생활에 필요한 자구가 모자라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귀의하고 공경하며 공양하면 법다이 구하는 바 의복 · 보배장식 · 의약 · 침상 · 방석과 그밖에 온갖 생활 도구를 다 갖추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미워하는 이와 만나게 되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고 외우며 귀의하고 공양하면,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이와 만나게 되고 미워하는 이와 헤어지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몸과 마음에 근심과 고통이 있고 또한 온갖 병고에 시달릴 때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모두가 신심이 안락하고 온갖 병이 없어지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느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뜻이 서로 맞지 않아 여러가지로 다투게 되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모두 해독심을 버리고 서로 화목하여 기쁜 마음으로 참아 견디며, 날이 갈수록 부끄러워하고 뉘우쳐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향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에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감옥에 갇혀 있게 되고 칼을 쓰고 사슬에 묶이어 온갖 고통을 받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모두 감옥에서 칼을 쓰고 쇠사슬의 묶임에서 해탈하여 자재하고 환희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감옥에 갇히어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마침내 해침을 당하게 되었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모든 감옥과 고문과 해침을 당하는 것을 면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여러 유정들이 심신이 피로하고 기력이 쇠약하여졌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그들은 다 심신이 유쾌하고 기력이 강성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에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모든 유정들이 육근이 갖추어지지 않고 혹은 손상을 입었을 때,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그들은 모두 육근이 완전해져 손상됨이 없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어떤 유정들이 미쳤거나 마음이 어지럽거나 귀신에 집혔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저들은 모두 마음에 미치거나 어지러움이 없고 온갖 괴로움을 여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에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어떤 유정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분한 마음과 원한과 간탐과 질투와 교만과 나쁜 소견과 수면과 방일과 의심 등이 치성하여, 그의 심신이 어지럽고 괴로워 항상 안락하지 않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이들 모두가 탐욕 등 여러가지 나쁜 것들을 모두 여의어 심신이 안락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어떤 유정이 불에 타게 되거나 물에 빠지게 되거나 바람에 불리고 혹은 산이나 바위나 벼랑이나 언덕이나 나무나 집에서 굴러 떨어져 정신 차릴 수 없게 되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이들 모든 위험과 어려움을 여의게 되고 안온하여 손해를 입지 않으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어떤 유정들이 여러 독사나 독충에게 물리고 혹은 가지가지 독약에 중독되었더라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며 생각하고 외우며 귀의하고 공경하며 공양하면 이들 모든 괴로움과 해로움을 여의게 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산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어떤 유정이 악한 귀신에 집혀 학질을 앓되, 혹은 날마다 앓고 혹은 하루 걸러 앓으며 혹은 3, 4일에 한 번 앓고 혹은 미치광이가 되어 심신이 떨며 정신을 잃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게 되었더라도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이 모든 병에서 벗어나 두려움이 없고 심신이 편안해지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일 어떤 유정이 저 여러 야차 · 나찰 · 아귀 · 필사차귀 · 포달나귀 · 구반다귀 · 갈타달포나귀 · 흡정기귀와 호랑이 · 늑대 · 사자 등 사나운 짐승과 버러지의 독과 해치고자 하는 기도와 온갖 나쁜 주술과 원수와 전쟁과 그 밖의 온갖 두려운 일에 둘러싸여 그 마음이 당황하고 목숨을 잃을까 겁에 질리며,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살기를 탐하며 괴로움을 싫어하고 줄거움을 구할 때,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며 생각하고 외우며 귀의하고 공경하며 공양하면 이들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어 목숨을 보존하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서 그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또 어떤 곳이든 그가 있는 곳에서 만약 모든 유정들이 혹은 총명하게 되고자 하고, 혹은 깨끗한 계율을 갖고자 하고, 혹은 선정을 이루고자 하고, 혹은 신통을 얻고자 하고, 혹은 반야 · 혹은 해탈 · 혹은 묘한 형상 · 혹은 묘한 소리 · 혹은 묘한 향 · 혹은 묘한 맛 · 혹은 묘한 촉감을 위하고, 혹은 이익 · 혹은 명예 · 혹은 공덕 · 혹은 기술을 위하고, 혹은 꽃과 과일 · 혹은 나무와 숲 · 혹은 평상 · 혹은 방석 등을 위하고, 혹은 도로 · 혹은 재물과 곡식 · 혹은 의약 · 혹은 집 · 혹은 하인 · 혹은 채색 · 혹은 단비 · 혹은 물 · 혹은 농사를 위하고, 혹은 부채 · 혹은 시원한 바람을 위하고, 혹은 불 · 혹은 수레 · 혹은 아들 · 딸을 구하고, 혹은 방편을 구하고, 혹은 복을 닦기를 구하며, 혹은 따뜻함 · 혹은 시원함 · 혹은 기억 · 혹은 가지가지 세간이나 출세간의 온갖 이롭고 즐거운 일들을 위하여 이들을 쫓고 구할 때 생겨지는 여러가지 근심과 고통이 절박하더라도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며 외우고 귀의하며 공경하고 공양하면, 이 선남자의 공덕과 묘한 定의 위신력 때문에 모든 근심과 고통을 여의고 소원을 만족하게 이루며, 보살은 그에 마땅한 바를 따라 저들을 천상에 나게 하거나 열반으로 이르는 길에 데려다 주느니라.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서품
②지장신앙
이렇듯 지장보살의 위신력이 크므로 거기에 의지하는 지장신앙 또한 매우 널리 퍼져 있다. 지장경을 보면 지장보살은 광목여인 때에 지옥고를 당하는 어며니를 위해 서원을 세우기를 “모든 세계에 있는 지옥과 삼악도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구원하여 지옥·아귀·축생 등을 악취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고 이런 우리들을 모두 다 성불케 한 후에야 제가 정각을 이루겠나이다.” 하였다. 지옥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에 따라 지장보살은 망자를 위한 구제자로 널리 신앙되고 있다. 따라서 49제 등 망자를 위한 재공양 때에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이 기능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지장보살 신앙에 의해 예수제나 우란분절과 같은 신앙형태도 등장했다. 지장은 산스끄리트어로 Ksiti-garbha이다. 이 말은 대지의 모태라는 뜻이다. 즉 지장은 인간의 활동 공간인 대지의 온 중생을 구제하려는 것이다.
지장사상은 <대방광십륜경>,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지장보살본원경> 등에서 나타난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하신 뒤에 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하실 때까지의 부처님이 안계신 시대의 오탁악세에서 번뇌와 죄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도하여 해탈케하는 일을 부촉받은 보살이다. 그래서 육도윤회하는 중생, 특히 가장 혹심한 고통을 받는 지옥중생까지도 남김없이 모두 제도하려는 원력을 언제나 어디서나 행하고 계신다.
지장신앙은 중국에서 도교와 융합하여 명부시왕신앙과 습합한 형태로 민간신앙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사찰 안에서는 말한 나위도 없고 때로는 사찰을 떠나 독자적인 신앙형태를 띠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신라 김교각스님은 중국에서 등신불이 되어 살아있는 지장보살로 신앙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찰에서 지장전이나 명부전에 주존으로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특히 다른 보살들은 다음 생에 성불을 하는 일생보처에 계신 분들이지만 지장보살만은 유독 모든 중생이 다 해탈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워 대원(大願)보살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보살들은 보배영락을 드리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지장보살만은 삭발한 수행자의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분에 대한 가슴 저린 신심이 우러나오는 것일까.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에서는 말세에 부처님 안계시는 동안 중생구제를 맡으신 지장보살을 더욱 찾게되는 것일까. 근래들어 지장신앙이 다시금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3)기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다음으로 많이 기도의 대상이 되는 분이 약사여래이다. 약사여래는 인간의 병고를 치유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기원은 <약사유리광여래본원경>에 있다. 이 경은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의 칠불 중 일곱 번쩨인 약사유리광여래에 관한 경이다. 이 경에서 보면 약사여래는 중생구제를 위한 12가지 큰 서원을 발하고 성취하였다.
1. 내가 내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나의 광명이 치연하여 무량하고 무수하고 무변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고 32대장부의 상과 80수호로서 그 몸을 장엄하며, 일체 유정이 나와 다름이 없도록 할 것을 원한다.
2.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몸은 유리와 같아 안팎이 명철하고 깨끗하여 하자와 티끌이 없고 높아 몸이 안주하고 염망으로 장엄하기가 해와 달을 능가하여 유명의 중생은 모두 이 빛을 받아 뜻하는 바를 따라 모든 사업을 성취할 것을 원한다.
3.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무량하고 무변한 지혜의 방편으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모두가 다함없는 수용할 물건을 얻게 하고, 중생으로 하여금 소유가 빈약하지 않도록 할 것을 원한다.
4.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사뙨 길을 행하면 그 모두를 보리의 길에 안주하게 할 것이며, 만악 성문과 독각승을 행하는 이가 있으면 그 모두를 대승에 안주하도록 할 것을 원한다.
5.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무량하고 무변한 유정이 나의 법 안에서 범행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 모두에게 불결계를 얻게 하고 삼취계를 갖출 수 있게 할 것이며, 설사 깨뜨리고 범하는 일이 있어도 나의 이름을 들으면 도리어 청정함을 얻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원한다.
6.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의 몸이 하열하여 온갖 기관이 불구이거나 추악하고 천하며 완고하고 어리석거나 앉은뱅이이고 꼽추이거나, 온 몸이 곪고 미치광이이거나 하는 온갖 병고가 없을 것을 원한다
7.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온갖 병으로 절박하여 구할 길이 없고, 의사가 없고, 약이 없고, 어버이가 없고, 집이 없고, 빈궁하고 괴로룸이 많으나 나의 명호를 한 번만이라도 귀로 들으면 그 모든 것이 없어지고 몸과 마음이 안락하고 집과 권속과 재물이 모두 충족하고 나아가서는 무상의 보리를 증득할 것을 원한다.
8.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인이 있어 여자의 온갖 나쁜 것 때문에 �기고 괴로워하여 극히 싫어하는 마음이 나서 여자의 몸을 버리고자 원하면 나의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일체의 여자를 변하여 남자가 되게 하고 장부의 상을 갖출 수 있고 나아가서는 무상의 보리를 증득할 것을 원한다.
9. 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여러 유정으로 하여금 마의 견방을 벗어나 모든 외도의 결박을 해탈시키고, 만약 온갖 악견의 수풀에 떨어지면 그 모두를 이끌어 거두어서 정견에 있게 하고 얼마동안 여러 보살행을 닦게하여 빨리 무상의 정등보리를 증득하게 할 것을 원한다.
10.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왕의 법을 어겨 묶이고 매를 맞고 옥에 갇치고, 혹은 사형을 당하게 되고, 기타 무량한 재난으로 능욕을 받아 슬픔과 근심으로 애타게하여 몸과 마음에 괴로움을 받음에, 만약 나의 이름을 들으면 나의 복덕과 위신력으로 그 모든 근심과 괴로움을 벗어나게 할 것을 원한다.
11.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롭힘을 받아 밥을 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악업을 짓는다해도 나의 이름을 들을 수 있어 오롯한 마음으로 수지하면, 나는 마땅히 먼저 상묘한 음식으로 그 몸을 배부르게 하고 뒤에 법의 맛으로 필경에는 안락하게 하기를 원한다.
12.내가 내세에 보리를 얻었을 때, 만약 여러 유정이 가난하여 옷이 없고 파리와 모기에게 물리고, 추위와 더위로 밤낮 괴로움을 당함에 만약 나의 이름을 듣고 오롯한 마음으로 수지하며 그 바라는 것, 즉 훌륭한 옷을 얻을 수 있고, 또 모든 보배로 장엄한 화만(華鬘)과 도향(塗香)과 고악(鼓樂)과 온갖 노리개를 얻을 수 있고 마음의 뜻하는 바를 따라 모두가 만족하기를 바란다.
12원 중에서 6,7번째 원에 따라 병고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약사여래를 찾게 되었다. 약사여래 외에도 법신 보신 화신의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을 위시하여 대지혜의 문수보살, 행이 큰 보현보살, 미래의 구원불 미륵존불 등 기도의 대상이 되는 불보살은 매우 많다. 그 중에서도 보현보살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 광대한 보살행의 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보현보살은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불자의 귀의차가 되고 있다.
그런데 왜 불교에서는 이렇게 많은 불보살님이 계신 것인가. 그리고 각 불보살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불보살님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중생의 근기가 다양하고 중생의 원이 다양하고 고통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을 구제하는 방편도 다양한 것이며 주된 방편을 따라 불보살님도 다양한 모습을 띠는 것이다. 즉, 이 모든 불보살님은 각기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본성에서 구제의 특성에 따라 각기 나툰 모습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수행으로써 기도를 할 때에는 어느 분이든 한분을 꾸준히 찾으면 될 것이요, 특별한 상황에서는 거기에 맞게 기도의 대상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고견스님 : 편집